후에 유적

후에 유적은 베트남 중부 도시 후에에 남아 있는 응우옌 왕조 시대의 도성 유적 으로서, 1993년 베트남에서는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역사적 인 도성 유적이다[38]. 현재 후에 구시가의 중심지에 자리한 황궁을 비롯하여 인근의 응 우옌 왕조의 황릉군과 티엔무 불교 사원을 비롯한 여러 유적이 남아 있다. 후에는 베 트남 최후의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수도로서, 1802년부터 1945년까지 베트남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다. 흐엉(Huong, 香) 강의 북쪽 연안에 자리잡은 후에 도성 유적은 1802년부터 1945
년까지 13대의 황제를 위한 황궁이 자 도성으로서, 풍수지리를 고려하 여 건물 배치가 이루어진 독특한 도 성 구조를 보여준다(도17). 멀리 강 건 너 남쪽에는 응빈(Ngu Binh) 산이 있고, 도성은 흐엉강이 돌아가면서 감싸고 있다. 도성 좌우의 강에는 섬 과 같은 모래둑이 자연적으로 형성 되어 있어서,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 를 형성하고 있다. 도성 주위에는 흐 엉강의 물길을 끌어들여서 만든 해 자를 조성한 후, 높이 5m의 성벽을 쌓아 놓았기 때문에, 도성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요 새이자 궁전이 된다. 황제들은 도성 안에 거주했는데, 도성 안에는 황후, 첩, 그리고 측 근의 신하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으며, 일반인들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후에 황궁 은 청대 중국 북경의 자금성을 모델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자금성과 비슷하면서도 베 트남적 양식으로 변화된 부분도 상당히 많다. 특히 민망 황제 때에는 서양의 바로크 건 축 양식을 도입하여, 중국, 서양, 베트남식이 결합된 독특한 국제적 건축 양식을 발전시 켰다. 현재 도성 내부에는 남문을 비롯하여 태화전과 자금성, 문묘 등의 여러 건축물이 남아 있다
흐엉 강 건너편의 남쪽에는 응우옌 왕조의 13대 황제릉들이 조영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2대 민망(Minh Mamg) 황제릉(1841년 건립 시작), 4대 뜨뜩(Tu Duc) 황제 릉(1864년 건립 시작), 마지막 카이딘 (Khai Dinh) 황제릉(1931년 완공) 등 이 유명하다. 대부분의 황릉에는 거대 한 석문과 다수의 석상, 석조 계단, 그 리고 문인석과 무인석, 동물 모양의 석상 등 다양한 조각이 배치되어 있다 . 그중에서도 응우옌 왕조 마지막 황제인 카이딘 황제의 황릉은 1931년 완공되었는데, 베트남과 유럽, 중국의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매우 사치스럽 고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황릉 중
심부 전각에는 프랑스에서 제작해온 카이딘 황제의 등신대 동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황제의 시신은 그 상 아래에 안치되어 있다. 후에의 황릉들은 궁성보다 훨씬 더 화려 하게 건립되었으며, 황제가 직접 생존해있을 때부터 설계에 참여한 경우도 확인된다. 당시 황릉의 화려함과 위엄의 강조는 내세를 중시하는 힌두교 문화의 영향, 혹은 베트 남 전통문화의 특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수많은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후에는 차분하고 아름다운 역사적 도시이기도 하지만, 프랑스 식민지 문화의 영향이나 현대 베트남 전쟁의 흔적으로 인해 깊이 상처받은 곳이기도 하다. 19세기 프랑스 식민지가 된 이후에는 유럽 양식의 근대적 건물들이 다수 건립되었으며, 베트남 전쟁기에는 미군의 집중적 폭격으로 1만여 명이 사망하고 폐허가 된 부분이 많다. 후에 지역의 여러 유적은 1994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부터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꾸준히 복원과 정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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