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안은 다낭에서 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투본(Thu Bon) 강 어귀의 남중국해 연안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도15). 임읍포(林邑浦), 하이포(Haifo), 호아이포(Hoai Pho), 파이포(Fayfo), 카이포(Kaifo) 등 여러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16세기 중엽 이래 중 국, 일본, 인도,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등 여러 나라의 상선이 기항하면서 국제적인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35]. 이 지역에서는 청동기-초기철기시대의 사후인 문화 유적부터 시작하여 참파 왕 국 시대를 거쳐 중세 및 근세까지의 다양한 문화 유적이 확인되며, 인근 해역 내에서 는 종종 침몰선이 확인되기도 한다. 동남아시아의 주요 국제 무역항의 하나였던 호이안은 1601년에 응우옌 왕조에서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편지를 보내어 일본과 정식으로 국교를 맺으면서, 수 많은 일본인이 17세기부터 이 지역으로 활발하게 진출하여 일본인 마을을 세우기도
했다[36]. 1623년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관(商館)이 호이안 구도심 지역에 세워 졌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명나라에서 건너온 중국인들로서, 유 적의 대부분은 중국계 이주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중국 남방계 건축물들이다. 19세기 말 이후에는 투본강 어귀에 토사가 퇴적되어 수심이 얕아져서 큰 배가 드나들기 어려 워졌으므로, 국제 무역항은 인근의 다낭으로 옮겨졌다. 투본강의 제방 위에 세워진 구도심 지역은 면적이 30만 제곱미터에 이루며, 주변 에는 베트남, 일본, 중국인들의 고분도 상당수 있다. 현재 구도심 지역의 건축물들은 베트남의 전통적인 목조건축 양식과 중국 및 일본의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국제적이 면서도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호이안 구도심 지역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오랜 기간 발전해온 동남아시아의 중요한 무역항으로서, 옛 도시의 건축물과 도로 등 도시 구조가 잘 보존되어 있는 중요한 역사 유적이다. 이 지역의 건축 구조는 토착 문화와 여러 가지 다양한 외국 문화가 결합되어 독창적인 거주 공간 문화를 형성한 채로 보존 되어 그 국제성과 문화적 독자성을 인정받아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 록되었다[37]. 구도심 내에는 1593년 일본인들이 세웠다고 알려진 일본교(日本橋, 혹은 來遠橋 라고도 함)를 비롯해서, 각지의 중국인들이 세운 복건회관(福建會館), 광조회관(廣肇 會館), 해남회관(海南會館), 조주회관(潮州會館) 등의 여러 건축물이 남아 있다(도16). 또 한 호이안의 목조 건축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진기가(進記家)를 비롯해서, 관제묘( 關帝廟), 광승가(廣勝家), 풍흥가(馮興家) 등 중국식의 건축 및 사원들은 중국계 이주 민들의 문화를 잘 보여준다. 현재의 건물들은 대부분 19~20세기에 재건된 것이지만, 좁은 골목길을 따라서 일렬로 늘어선 독특한 도시 경관은 호이안에서만 찾아볼 수 있 는 풍광이다. 호이안은 베트남의 중국계 이주민의 문화와 중부지역 항구도시의 국제 성을 대표하는 매우 중요한 고도시 유적이자 세계적인 관광지이다